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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9월 03, 2009

임진왜란 최고의 육군 명장 - 정기룡

어릴 때 나시찬이라는 최고의 배우가 있었다.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그가 주연을 한 작품도 많지 않다. 그는 최고의 인기드라마
<<전우>>를 주연했었고, <<정기룡>> 장군을 소재로 한 <<꽃신>>에서 주인공을 맡아서 주연을 했다.(어머니 박주아 등 197?년 작)

 

얼핏 어렸을 적의 기억이지만, 정기룡은 엄청난 파워를 가지 명장이다.

 

"수군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육군에는 정기룡이 있었다."

 

이런 찬사가 하나도 아깝지 않은 인물이다. 물론 임진왜란을 통틀어 최고의 공헌자는 이순신이지만, 육지에서 아래의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도 항전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흔히 권율이나 김시민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이들은 방어에만 치중하여 명성을 얻은 사람들이었고, 개인의 무력과 지략으로 가장 손꼽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곽재우와 정기룡이다. 그 중 정기룡은 가히 전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정기룡 장군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거창, 금산싸움에서 전공을 세우고 상주성을 탈환했으며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령에서 적장을 생포하고 성주·합천·초계·의령·경주·울산을 수복했던 인물이다. 경남 하동 출신인 그는 경상도 방면의 왜군을 소탕했으며, 1617년 삼도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특히 포로로 잡힌 상관을 구하기 위해 필마단기로 그를 구한 그의 용맹을 일컬어 조선의 조자룡이라고 까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동군 금남면 상촌마을에 있는 경충사의 정기룡 장군 영정

 

곽재우의 경우 과거에 합격했다가 시의 내용이 맘에 들지 않아, 합격을 취소시킨 속좁은 선조마저 그에게 기룡이란 이름을 직접 하사할 정도로 선조는 그를 아꼈다.

 

주목받지 못한 자

임진왜란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한 사람이 북관대첩에서 승리한 정문부라면, 이순신과 같은 비중을 가지고 있는 정기룡에 대한 조명은 너무나 부족하다. 심지어 그의 사당이 있는 하동군에서 조차 그의 기록을 찾기 힘들다.

 

이순신의 승리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한 전투함 제작의 천재 나대용이나 북관대첩을 세우고도 결국 찍혀서 미움을 받은 정문부나, 숱한 공을 세우고도 조정을 미움을 받아 10여회가 넘는 벼슬을 사양하는 곽재우 장군에 대한 재조명은 다분히 필요하다. 임진왜란 최고의 맹장 정기룡 장군보다 논개가 주목받는 세상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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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1년 전에야 거북선이 완성되었는데, 사실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나대용이 10년을 연구한 결과물이었다. 이순신은 고기가 놀 수 있는 물을 제공한 것뿐이었다.

 

나대용은 임란 후에도 거북선과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한 창선을 만들었다. 창선은 창과 칼을 빽빽히 꽂아 왜구가 배에 오르는 것을 막았고(거북선의 장점), 승선 인원(약 150명)이 많아서 한정된 수군으로 더 이상 늘리지 못하는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하여 45명으로도 운용이 가능한 배를 만들었으나, 그의 상소가 받아들여 졌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일본 수군보다 느린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하여 쾌속선을 발명하기도 했지만, 이것 역시 중하게 사용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물이 없으면, 물고기가 놀지 못하는 법 ... 이순신이 나대용을 10년만 더 바람막이를 해주었더라면 조선은 청해진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재현할 뻔 했다.

 

개인적으로 공로를 평가를 내린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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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정기룡 ★★★★★

나대용 ★★★★★

곽재우 ★★★★

정문부 ★★★

권   율 ★★★

김시민 ★★★

유성룡 ★★★

광해군 ★★

선   조 -★

 

경상남도와 진주시, 하동군은 그 지역에서 태어난 가장 위대한 인물 정기룡 장군에게 전혀 존경심이 없어 그 흔한 홈페이지 하나 없다. 미안 하지만 그 지역에서 정기룡 장군보다 위대한 장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묘소가 있는 상주시는 하동군보다 더 개판이니 웃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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