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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9월 12, 2010

너무나 슬픈 허난설헌의 삶

불행한 삶의 여주인공 허난설헌

허난설헌은 아주 행복한 삶을 15년을 살고, 아주 불행한 삶을 12년을 살았다.
중국에서 대문호 소식(동파), 소철, 소순 가족을 3소라고 불렀듯이, 허난설헌의 가족도 모두 대문장가의 집안이었다.
 허난설헌은 15살에 1살 연상인 명문 안동김씨의 김성립에게 시집가게 된다.

이때부터 그녀의 삶은 급전직하 하게 된다.
- 18세 때는 아버지 허엽이 병으로 객사하고,
- 20세에 딸을 잃고, 21세에 아들을 잃어, 그 절규하는 심정을 <곡자>에 담았다.
- 21세때에 아들의 묘비명을 써주고, 가장 허난설헌을 아껴주었던 둘째 오빠 허봉이  귀양을 간다.
- 26세 때에 둘째 오빠 허봉이 객사한다.
- 27세에 원인불명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가 27세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모든 것은 죽음과 상실 뿐이었다.

허난설헌의 잘못은 짝을 잘못 만난 것
역사에는 허난설헌의 남편인 김성립과 시어머니 송씨는 아주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대부분이 허균과 친인의 진술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똑똑하거나 예쁜 천재 누나에 비해 눈에 차지도 않는 형부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김성립의 잘못은 평범한 인물이라는 것일뿐 아무런 잘못도 없다. 김성립이 방탕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는 그 시대의 대부분의 인재들처럼 28세에 급제를 하였는데, 그 해는 허난설헌을 죽은 해였다. (허균도 26세에 급제를 함)

허균은 그의 자형(김성립)을 "문장을 짓지는 못해도 시험문제는 잘 푼다!"는 평가를 내렸고,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렸다. 현대로 평가하자면, IQ는 모르겠는데 EQ는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그 평가에 대한 관측 기준은 아마도 김성립의 10대 였을 것이다. 대문호 집안에서 평범한 사람이 눈에 찰리가 없다. 당신도 동생이나 누나의 짝을 볼 때는 그런 느낌이 없었던가?


김성립의 평범한 뛰어남이 죄일까?
27세의 나이로 허난설헌이 죽은 해가 되어서야, 김성립은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리고 가문을 잊고자 남양 홍씨를 처로 들이고 재혼을 하게 된다. 

처음부터 남양 홍씨와 결혼을 했다면 김성립도 행복한 삶을 누렸을지도 모르겠다. 김성립에게 허초희는 너무도 감당하기 힘든 존재였을 지도 모른다. 마치 적벽대전에서 부채살 뒤에서 웃고 있는 공명을 째려보는 주유를 지켜보는 노숙의 입장이랄까? 김성립은 천재가 아니었기에 그녀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죽자마자 재혼한 김성립을 욕할 자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에 가문을 이어야 할 장자의 본처가 후사도 남기지 않고 요절해 버린 상황에서 어떤 가문이 재혼을 재촉하지 않으랴?

진정 불행한 것은 김성립의 새로운 처 남양홍씨였다. 김성립과 결혼한 지 3년만에 자식도 두지 못하고 남편이 임진왜란에서 전사하고 그의 시체도 찾지 못하고 가묘만 만들어 제사를 지내게 된다. 홍씨는 평생 독수공방을 해야했고, 결국 가문에서는 양자를 들이게 한다.

혹자는 허난설헌이 죽어서도 김성립과 같이 묻히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남양 홍씨는 껍질만 있는 가묘에 김성립과 같이 매장되어 있을 뿐이고, 그나마 허난설헌은 자식들과 함께 묻혔으며, 12년을 결혼생활을 하였다. 고작 3년의 신혼만 누린 채 평생을 독수공방해야 했던, 홍씨에겐 그만큼의 당연한 권리가 있다.

또한 허균이 역모로 몰려 숙청된 결과도 김성립과 묘를 분리하는데 한 몫 했을 것이다.

잘못된 만남 김성립과 허난설헌
군자호구, 요조숙녀는 오히려 김성립과 홍씨를 말할 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만났다면 좀 더 행복한 삶을 누리지 않았을까? 천재 여류시인도, 천재문호를 만났으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평범함의 안타까움, 비범함의 슬픔, 짧은 인연의 비애가 김성립- 허난설헌 - 홍씨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 같아 안타까워 이렇게 글을 남긴다.

수요일, 3월 03, 2010

한국 정보에 대한 왜곡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이유

반크라던가 민간에서 열정적인 활동으로 외국의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않는다. 왜 우리가 일본에 정보전에 밀리고 있는 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런 일은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근본적인 처방
반크의 활동은 물이 새는 댐에 땜방하는 정도의 사후 처방 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의 대처를 보면, 간단하게 답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것이 되지 않는 지가 궁금할 뿐이다. 일본은 영어로 된 친절한 소개 책자를 각 국의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통해 교과서나 지도를 만드는 기관이나, 출판사 그리고 정보를 서비스하는 관련 기관에 전달한다. 전달하는 것도 그냥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담당자의 앞으로 전달한다.  

이것이 바로 정부 채널을 통한 정식적인 활동이다. 우리나라의 대처도 이와 같아야 한다. 특히 지리와 한국의 역사 소개에 대한 부분은 항상 영문 자료로 업데이트 되어야 하며, 각 국에 전달하여야 한다.

한국 정부가 할 일
우리나라 정부도 외교통상부를 통해 홍보자료를 각 국의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보내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이다! 그 다음에 그것을 어디에, 누구에게 보내야 하느냐 하는 것은 정부에서 신경 쓰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이것은 외교부 뿐만 아니라 교과부도 관여를 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해당 주재국에 한국의 홍보 자료(한국 소개와 관광 2가지)를 전달할 기관 리스트를 전달받아야 한다. 전달 받는 작업을 할 때 반드시 담당자를 명시하게 해야 한다.

각 나라의 영사관에서 작성한 리스트를 꼼꼼히 살펴보고, 한국의 지리와 역사에 관련하여 리스트를 선별한다. 대략적인 리스트의 우선 순위를 보면,

1. 교과서를 담당하는 정부 부서, 출판사
2. 지도 업체
3. 한국의 정보를 서비스하는 주요 기관

특히 일본은 세계의 주요 지도 업체와 교과서 제작업체에는 반드시 챙겨서 보낸다.

외국에서 한국의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그 나라말(주재국)로 한국을 소개하는 정보를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임을 교포이면 누구나 실감할 것이다. 만약 정부 기관만 제대로 돌아갔다면 반크라는 단체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것도 안되면 차리라 반크를 홍보대사로 스카웃하라!
나는 대한민국의 정부가 이러한 체계적인 한국 홍보 활동을 한다는 정보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을 홍보한다는 개념조차도 서 있지 않을 그들이라고 확신한다. 한국을 홍보한다는 것은 첫째, 한국 자체에 대한 알림(문화, 역사, 지리)과 둘째, 한국의 관광을 위해 홍보하는 것 두 가지를 말한다.

이것에 수반하는 구체적인 활동을 각국에 주재하는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대기업처럼 업무 분석하면 낙제점을 받지 않을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적어도 내가 본 영사관이나 대사관에 근무하시는 분들 중 애국심을 가지고 근무를 하시는 분들은 하나도 없었다. 접대받기를 좋아하고, 높은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는 그들에게 최소한의 일이라도 시켜야 되지 않을까?

수요일, 10월 07, 2009

위키백과는 몇 명이 작업을 할까?

위키백과의 사용자수는 그 항목수와 비례한다. 2009년 10월을 기준으로 볼 때 각각 이웃 국가들의 항목수와 활동자수는 다음과 같다.

 국가항목수 활동인구
미국  3,054,313150,560
일본  622,13611,531
중국  275,2885,851
한국  114,9162,088
   

언뜻 보면 가입자수는 많지만, 활동인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것이 마치 그 국가의 언어에 대한 우월성을 나타내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솔직히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의 경제력과 문화에 대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날 뿐이다. 중국의 경우 본토인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그 정보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타이완이나 미국에 있는 중국인들 그리고 기타 국가에 있는 중국인들이 활동을 한다. 그래서 10억 인구 중에서도 고작 5천 8백 50명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인구 1억이지만, 막강한 경제력으로 인해 활동인구가 중국의 두배, 대한민국의 다섯배에 이른다.

초고속 인프라가 세계1위인 대한민국의 경우 고작 2천명이 활동을 하고 있다. 이것은 위키의 시스템에 대한 적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막상 활동을 결심하고 활동을 해도, GFDL이라는 정책에 대해 적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 사용법이 게시판을 사용하는 것만큼 쉽지 않아서 전문가들조차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요일, 9월 13, 2009

파닉스(Phonics)

파닉스(Phonics)는 단어가 가진 소리, 단어의 읽는 소리를 배우는 교수법이다. 영어권에서는 아이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 방법으로서 이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파닉스에서는 발음 /ㅋ/ 는 c, k, ck 의 어떤 것으로 쓰여진다와 같이, 어떤 발음이 어느 문자군과 결합되어 있는 지를 알려주는 교수법이다. 그리고 그 문자의 발음을 조합해 모르는 단어의 올바른 발음을 구성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습법이다.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성된 한국어에서는 /가/, /나/, /다/라는 문자가 조합되어 어떻게 소리나는 지를 가르치는 학습법을 파닉스라고 한다.
 

영어 파닉스

파닉스는 아이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넓게 이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아이는 통상, 5세나 6세경에 파닉스를 배우기 시작한다. 파닉스를 이용해 영어 읽기를 가르치려면, 아이가 발음과 문자의 패턴과의 대응을 배울 필요가 있다.
 

기본 규칙

알파벳의 원칙

언어학적 관점에서는, 영어의 철자법은 《알파벳 원칙》(Alphabetic Principles)」에 근거한다.즉, 알파벳의 표기체계에 대해 문자는 발음을 적기 위해서 이용된다. 예를 들면 단어 pat는 음소(낱소리) /p/, /æ/, /t/ 를 각각 나타내는 문자 p, a, t 로 기록된다.

스페인어 등의 몇몇 알파벳 언어의 철자법에서는 발음과 문자의 패턴이 거의 일대일로 대응하기 때문에, 발음하는 것이 비교적 쉽다. 그에 대한 영어에서는 철자의 패턴은 일정한 규칙에 따르지만, 어느 발음도 몇 개의 다른 문자군으로 표시될 수 있기 때문에, 표기 체계는 복잡하다. 결과적으로 영어 철자의 패턴은 다양한 형식을 가진다. 예를 들면, 문자 패턴 ee는 대부분의 경우 음소 /i/ 에 대응한다. 그러나 그 음소는 문자 y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같은 문자군 ough는 enough 의 /f/, though 의 /o/, through 의 /u/, cough 의 /f/, bough 의 /a/ 등, 나타나는 단어에 따라서 다른 발음으로 대응한다.

비록 철자의 패턴이 일정하지는 않지만, 영어 철자법에 대해 음절구조, 음성학, 액센트를 고려하면, 75%이상의 신뢰할 수 있는 규칙군이 존재한다.

아래는 파닉스 패턴의 예를 나타낸다.

모음의 파닉스 패턴
  • 단모음은 다섯 종류의 단문자 a, e, i, o, u로 표시되는 모음으로, 발음은 각각 cat의 /æ/, bet 의 /ɛ/, sit 의 /ɪ/, hot의 [ɒ], cup의 /ʌ/ 이다. 단모음은 실제로 단시간에 발음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습관적인 명칭이다.
  • 장모음은 단문자 모음의 문자명과 같다. 예를 들면 baby의 /eɪ/, meter의 /i/, tiny의 /aɪ/, broken의 /oʊ/, humor의 /ju/이다. 여기서 장모음이라고 하는 명칭으로 교육학적 관점이며, 음성학에서 말하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 슈와(schwa)는 대부분의 단문자모음이 들어맞는 발음이다. 예를 들면 lesson 의 o 등, 강조되지 않는 발음에 나타나는 구별할 수 없는 모음으로, 발음 기호 /ə/ 로 나타내진다. 슈와는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영미의 초등학교에서는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의 교육자는 슈와는 영단어를 읽는데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에 초급 리딩 교육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폐음절(Closed syllables)은 모음 한 문자에 자음이 계속 되는 음절이다. 단어 button의 음절은 한 문자의 모음에 자음이 계속 되기 때문에 폐음절이다. 따라서, 문자 u'는 짧은 발음 /ʌ/가 된다(두번 째 음절의 o는 강세를 받지 않기 때문에 /ə/ 라고 발음된다).
  • 개음절(Open syllables)은 모음으로 끝나는 음절이다. 그 마지막 모음은 장모음으로서 발음된다. 단어 basin 에서는 ba- 가 개모음이며, /beɪ/ 라고 발음된다.
  • 이중모음(Diphthongs)은 서로 이웃한 두 모음이 조합되어 발음되는 음성학적 요소이다. 영어에서는 이중모음이 있는 단어로 cow의 /aʊ/ 나 boil의 /ɔɪ/ 등을 들 수 있다. 장모음 중 /eɪ/, /aɪ/, /oʊ/, /ju/ 4개는 이중모음이기도 하다.
  • 모음이중음자(Vowel digraphs)는 모음을 나타내는데 두 문자가 사용되는 철자 패턴이다. 예를 들면 sail의 ai 등이다. 이 sail의 예와 같이 이중음자의 처음 모음은 장모음으로서 발음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au 를 /ɔ/라고 발음하는 경우나, oo를 /u:/ 또는 /ʊ/라고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 모음-자음-E(Vowel-consonant-E)는 한 문자의 모음이 자음 한 문자(+"th")를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e에 의해서 장모음화 되는 패턴이다. 예를 들면 bake, theme, hike, cone, cute 등을 들 수 있다(e에 의한 장모음화는 theme, them, cute와 cut 등의 발음을 각각 비교하면 잘 안다). 단어 meet 등에 표기되는 ee는 이 패턴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자음의 파닉스 패턴
  • 자음이중음자는 자음의 음소가 두 문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일반적인 예로는 ch는 //tʃ/로 발음되며, ng는 /ŋ/으로, ph는 /f/로, sh는 /ʃ/로, th는 /θ/ 나 /ð/로, wh는 /ʍ/(미국 영어에서는 자주 /w/ )로 나타내는 경우를 들 수 있다. 표기 wr은 /r/로 나타내는 경우나, kn가 /n/로 나타내는 경우 등도 (무음 문자를 포함한 패턴) 자음이중음자에 포함된다.
  • 단모음+자음의 예로는 peek의 /k/, stage의 /dʒ/, speech의 /tʃ/ 등이 있다. 이러한 발음은 각각, 단어 끝의 발음을 나타내는데 두가지 방법의 표기법이 있다. 즉, 발음 /k/ 는 ck 또는 k로, /dʒ/는 dge 또는 ge로, /tʃ/ 는 tch 또는 ch로 쓰여질 수 있다. 이것들 끝 자의 발음을 어떻게 표기할 지는 선행하는 모음의 타입에 의해서 결정된다. 선행모음이 단모음인 경우는 상기 중 앞의 경우처럼 표기가 된다. 예를 들면, pick, judge, match 등이다. 반대로, 선행모음이 단모음이 아닌 경우에는 took, barge, launch 등과 같이 후자와 같이 표기된다.

수요일, 9월 09, 2009

위키백과 10만을 돌파하다!!

2009년 6월 4일 한국어 위키백과가 드디어 10만 항목을 돌파하여 백과사전으로서 틀을 갖추게 되었다.


위키백과의 영문 자료수가 120만에 즈음했을 때 영국의 저명한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는 출판 포기를 심각하게 고려하였다. 브리태키니커 뿐만아니라 모든 백과사전을 서비스하는 업체에 있어서 위키백과는 치명적이다. 2009년 6월 4일을 기준으로 한국어 위키백과는 10만을 돌파하였고, 영문 위키백과의 자료수는 280만, 중국어는 25.5만, 일본어는 59.14만에 이르렀다.

 10만을 돌파한 한국어 위키백과

불평등한 매체
위키백과는 전혀 평등하지 못한 매체이다. 위키백과의 영향력은 위키 참가 또는 사용 인구가 많을 수록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는 문화적, 언어적 빈익빈부익부의 매체이다. 위키백과는 언어와 지식의 격차를 심화시키며, 언어권 국력과 인구에 의해 좌우된다. 즉, 나라와는 상관없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고 잘 사는 나라일수록 내용이 풍부해 질 수 밖에 없다.

겨우 두번 째 탭 (중간 좌측)에 위치한 한국어 위키백과 

전세계의 지식유산
위키백과에서 가장 당황하게 하는 것은 국가의 개념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당연할 지 모르겠지만, 북한이라는 말은 한국어 위키백과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약간 낯선 국명을 만난다. 또한 중국도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 민국으로 국가의 개념을 구별한다.
한국어도 한국 사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과 재일교포, 조선족과 까레이스키와 같은 북한 문화어 사용자와 재미교포, 재일교포 등 재외교포 중 서울 표준어를 중심으로 사용하는 모든 한민족들이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위키백과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표준어를 중심으로 저작될 수 밖에 없다.


정치적인 파워
이렇듯 백과사전이 미치는 영향은 단지 백과 사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적인 파워에도 위키백과는 치명적이다. 2005년 10월 26일 위키백과는 중국 인터넷 당국이 위키백과를 차단했다고 밝혔다. 물론 북한도 위키백과의 차단국 중에 하나이다. <천안문 사태>와 같은 항목은 중국으로서는 너무나도 민감하지만, 거의 모든 언어로 위키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부담이 아닐 수 없으며, 북한도 김일성이나 김정일 등의 인물 소개서 부터 공개되는 체제 유지가 위험한 그런 자료들이 많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위키를 공개하기 힘들 뿐더러 인프라 자체도 썩 좋지 못하다. 한국도 북한이나 중국과 별 다를 바 없다. 체제와 정치 시스템의 우세를 확신하지 못하고, 북한 관련 모든 사이트는 차단하고 있다.

이것은 위키백과의 장점 중에 하나는 동일한 항목에 대해,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 장점에서 기인하였다. 결국 전 세계 언어로 홍보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현실을 공개할 수 없는 나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다국어의 장점 때문에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는 지방자치체가 홍보를 위해 꼼꼼한 지원을 한 흔적이 나타난다. 아시아에서는 자료량이 가장 많은 일본어 위키백과를 보면, 지방 곳곳까지, 작은 철도역 하나까지 세세한 정보가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서울시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2009년 3월 26일까지 진행된 다음-위키백과 - 서울시의 <서울시 지식공유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이용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자료는 여전히 외국보다 빈약한 곳이 많다.


위키백과는 중립?
위키백과는 표면적으로 중립성을 고수하며, 진실을 옹호한다. 말 그대로 표면적이다. 위키백과는 협업에 의해 만들어지는 백과사전이며, 사용자가 모두 극우나 극좌라면 그 정보 내용이 그대로 반영된다. 이의를 제기하면, 토론에 의해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적 연구금지!"와 같은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독도나 기타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보면, 여전히 그 나라의 입장을 반영한다. 독도의 일본어를 누르면, '쓰시마섬, 시마네현'(竹島 (島根県)으로 연결되며, 영어를 누르면,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로 연결된다. 양쪽에서 주장하는 역사적인 근거가 다르니 주석을 나타내는 Reference에도 각자의 주장에만 신경을 쓴다. 관리자는 언어권 별로 있으니,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다양한 서비스 연계
위키백과는 다른 서비스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장 많은 이익을 보는 것은 물론 포털이다. 유료로된 백과사전을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백과사전의 빈틈을 위키는 착실히 메워준다.
구글 어스는 위키와 연계된 가장 편리한 서비스이다. 예를 들어 조선 왕릉을 보자,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으로 등록될 가능성이 높은 능묘의 정보엔 위성좌표가 꼼꼼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것을 클릭하면 외부의 창이 떠서 구글 맵 등의 서비스로 연계된다.


구글 어스에 들어가서도 위키백과의 정보를 찾아볼 수 있게 연계되어 있다. 물론 옵션이니 체크가 된 상태여야 한다.

10만 돌파의 의의
비록 겨우 10만을 돌파하였지만, 위키백과의 잠재력은 여전히 무한하다. 위키백과의 특성 상 서비스 이용자수나 필자로 참여하는 사용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참여의 문턱이 높은 것은 개선해야 할 사항 중의 하나이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지만, 계정 사용자 중 9/10는 거의 참여를 하지 않는 휴면 사용자이고, 바꿔 말하면 10명 중 9명은 탈락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GFDL의 특성을 이해하고, 위키의 문법을 이해하고, 위키백과의 룰에 적용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에 있다. 현실적으로 대학생 이상의 제대로된 리포트를 쓸 수 있는 이용자(베끼지 않고 자체적으로 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 이용자)와 외국어 능력이 어느 정도 가능한 이용자만 별 무리없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요일, 9월 03, 2009

위키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

1. 내가 작업한 것은 내 저작권이다.

천만에요. 위키는 협업작업을 통해 저작권이 공개됩니다. 즉 내가 저작권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수정하거나, 보완, 축소할 수 있습니다.



2. 내가 작업한 것은 손대면 안된다. 

위키는 공동 작업입니다. 내가 작업을 했더라도 다른 사람이 수정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위키를 쓰기전에 나오는 경고문이다.


협업과 GFDL, 저작권에 위배되면 올리지 말라는 경고문



3. 위키에 내가 직접 찍은 사진만 올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찍은 것도 자유로운 사용허락(수정, 재배포)만 획득하면, 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가장 많은 것은 GFD(자작)입니다. 그리고 또한 위키는 이미지를 저작권을 표시하면서 하나씩 올려야 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물편합니다.


위키 회원 가입

회원가입

회원가입에 필요한 것은 ID와 패스워드, 메일뿐이다.

통합계정

계정을 만들고 나서, 옵션에서 어려나라의 위키를 통합하는 계정통합을 클릭해 주면 따로 각 나라의 위키에 가입을 하지 않아도 통합된 계정으로 작업을 할 수 있다.

중립성과 정치적인 자유

위키의 한국어는 한국어가 아니라 KOREAN이다. 이것은 남한과 북한을 이르는 말로서 위키에서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같이 정식 명칭으로 표기를 한다. 따라서 <남한과 북한>이라는 말은 중립적이지 못하다. 북한은 <남조선과 북조선>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독도와 같은 민감한 문제는 역사적인 사실 여부를 떠나 기계적인 중립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일본은 자국의 주장을, 한국어 위키는 한국의 주장을 싣는다. 중국이라는 말 또한 대만(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을 통칭하는 말이며, 위키백과에서는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반면 정치적인 자유를 가지고 있어서 어떤 내용을 묘사하던, 그것이 중립적이며, 사실적이라면 대한민국의 법에 맞춰 쓸 필요가 없다.

[위키] 주석 만들기 - 인용



위의 복잡하게 보이는 문서를 편집을 클릭해보면 다음과 같이 단 한줄로 나타난다...!!!

주석을 만드는데 필요한 문법은 덜렁 하나!!!

꺽쇠를 하고 References / 이 부분이다.


그럼 내용은 어떻게 생길까? 주석인용된 것을 출력하는 기능이다.


인용의 형식

 

〈ref〉 아래의 1~3〈/ref〉

맨 앞에 ref를 맨 뒤에 /ref를 붙이고 중간에 아래와 같이 삽입하면 된다.

 

1. 단순형: [http://www.site.com]

2. 뉴스 인용

{{뉴스 인용

|제목=한국초대석-반크 박기태 단장

|작성일자=2005-03-23

|저자=정병욱 기자

|출판사=한국일보 |url=http://weekly.hankooki.com/lpage/people/200503/wk2005032319551837470.htm

}}


3. 웹 인용

웹 사이트에 있는 내용을 근거로 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웹 인용

|url=http://www.suntimes.com/output/tech/cst-fin-feed06.html

|제목=Helping publishers, bloggers get the word out

|출판사=[[시카고 선 타임즈]]

|작성일자=2005-09-06

|확인일자 =2006-08-10

}}


본문에서 이렇게 해 놓으면 주석에서 순서대로 1. 2. 3. ... 처럼 번호로 출력된다.

 

※ 인용과 주석이 중요한 것은 단순히 출처를 밝히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위키의 객관성중립성을 담보하는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용의 근거자료가 신뢰도가 높은 경우 더 효과적이다.

 

신문의 경우 극우신문이나 신뢰도가 낮은 잡지보다는 소비자 신뢰도가 높은 것일수록 더욱 효과적이다.



[위키] 외국어 추가하기

주요한 명사나 인물 등에는 외국에도 동일하게 소개된 페이지가 있다.

 

한국어에서 외국어로 이동하기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다국어와 링크는 위키의 가장 큰 무기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을 소개하는 글을 보자!! 왼쪽편으로 ...



맨 왼쪽에 해당 외국어가 해당언어로 쭉 나와 있다. 사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맨 아래 부분에 다음과 같이 붙여주면 된다.

 

[[ar:روه مو هيون]]
[[da:Roh Moo-hyun]]
[[de:Roh Moo-hyun]]
[[el:Ρο Μου Χιουν]]
[[en:Roh Moo-hyun]]
[[es:Roh Moo-hyun]]
[[et:Roh Moo-hyun]]
[[fi:Roh Moo-hyun]]
[[fr:Roh Moo-hyun]]
[[gl:Roh Moo-hyun]]
[[hu:Ro Mu Hjon]]
[[id:Roh Moo-hyun]]
[[io:Roh Moo-hyun]]
[[it:Roh Moo-hyun]]
[[ja:盧武鉉]]
[[la:Noh Moo-hyun]]
[[mr:रोह मू-ह्युन]]
[[ms:Roh Moo-hyun]]
[[nl:Roh Moo-hyun]]
[[nn:Roh Moo-hyun]]
[[no:Roh Moo-hyun]]
[[oc:Roh Moo-hyun]]
[[pl:Roh Moo-hyun]]
[[pt:Roh Moo-hyun]]
[[ro:Roh Moo-Hyun]]
[[ru:Но Му Хён]]
[[scn:Roh Moo-Hyun]]
[[simple:Roh Moo-hyun]]
[[sv:Roh Moo-hyun]]
[[vi:No Mu-hyeon]]
[[zh:盧武鉉]]
[[zh-yue:盧武鉉]]

 

[[국가+콜론+해당키워드]]

 

주의해야 할 점

- 중국은 zh 대만은 zh-yue, 일본은 ja를 사용한다.

- 알파벳 순서대로 배열해야 꼬이지 않는다.

[위키] 언어틀 쓰기

중국어

중국어는 간체(중국)와 정체(대만)와 병음을 함께 표시한다.

 

칭다오를 예를 들면:

결과:

 칭다오(청도, 중국어 간체: 青岛, 정체: 青島, 병음: Qīngdǎo)는 산둥 성부성급시이다. 산둥 반도 남부에 위치하는 산업도시이며, 군항이다. 면적 1만1026km2, 인구 731만명이다.

 

 

문법:

'''칭다오'''(청도, {{zh-stp|s=青岛|t=青島|p=Qīngdǎo}})는 [[산둥 성]]의 [[부성급시]]이다.

 

 상기에서 s=simple t=traditional을 의미하니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p는 병음이다.

 

기타 외국어

싱가폴을 한번 보자!

결과:

 싱가포르(말레이어: Singapura 싱가푸라[*], 영어: Singapore, 타밀어: சிங்கப்பூர் 싱카푸르)는 동남아시아도시 국가이며, 법률과 그 집행이 매우 엄격한 나라로 유명하다.

 

문법:

'''싱가포르'''({{llang|ms|Singapura|싱가푸라}}, {{llang|en|Singapore}}, {{llang|ta|சிங்கப்பூர்|싱카푸르}})는 [[동남아시아]]의 [[도시 국가]]이며, [[법률|법률과 그 집행]]이 매우 엄격한 나라로 유명하다.

 

말레이어, 영어, 타밀어가 병기되었다. 잘 모르는 아는 것만이라도 해 두면 뒤에 다른 사람이 도움을 준다.

위키의 미래(2년 후)

위키의 미래는 이미 화려하다. 다른 나라의 자료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문 자료와 같은 경우는 120만 정도로 세계 최대의 백과사전 업체인 브리태니커를 손들게 했다. 미안하지만, 아직 한국은 그 1/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위키의 분량

우리가 6만건에서 7만건에 도달할 동안, 중국은 17만건에서 20만건에 도달했다. 2008년 07월 31일 기준 위키의 분량은 중국이 20만건, 일본이 51만건, 미국이 240만건, 한국은 겨우 7만건에 도달했다. 2009년 6월 4일 우리가 10만건에 드디어 도달했을 때는 중국은 25만건, 일본은 60만건, 미국은 290만건으로 격차는 더욱 더 벌어지고 있다. 2009년 9월 현재에는 미국이 300만건에 이미 도달해 실질적으로 영문 자료는 세계 최강의 백과사전이 되었다.

위키의 진정한 위력

위키의 파괴력은 체계적인 자료 정리이다. 그 백과사전의 질에 관해서는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네이버나 다음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2년 이내(2010) 앞지를 수 있다. 물론 성격 자체가 틀리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이라 할 수는 없다. 위키가 백과사전이라면, 포털의 컨텐츠는 팁과 여행기 등 수필에 가까운 단편화된 정보들이다. 즉, 둘은 베타적인 관계라기 보다는 상보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결국 이용자들의 정보에 대한 욕구를 더욱 더 잘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및 기관들의 지원

제주도를 소개하는 위키의 자료를 보라. 일본어나 영어 자료보다 못하다. 일본이나 중국의 위키를 보면, 놀라울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특히 일본이나 미국은 아예 지방자체 단체나 정부 등에서 체계적인 예산 지원을 받아서 작업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위키 자체가 관광안내 자료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국언어로 된 곳은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다. 이런 것들은 감히 브리태니커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자방자치 단체에서도 위키로 지자체를 홍보할 한 명의 파트타이머를 고용할 예산을 따로 마련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 3개월을 작업 시킨다고 할 지라도 500만원의 예산이면 충분하다. 이미 서울시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마쳤고, 다른 지자체들고 이러한 움직에 참여를 해야 한다. 특히 국제행사를 열겠다고 하는 지자체는 위키만이 그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임진왜란 최고의 육군 명장 - 정기룡

어릴 때 나시찬이라는 최고의 배우가 있었다.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그가 주연을 한 작품도 많지 않다. 그는 최고의 인기드라마
<<전우>>를 주연했었고, <<정기룡>> 장군을 소재로 한 <<꽃신>>에서 주인공을 맡아서 주연을 했다.(어머니 박주아 등 197?년 작)

 

얼핏 어렸을 적의 기억이지만, 정기룡은 엄청난 파워를 가지 명장이다.

 

"수군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육군에는 정기룡이 있었다."

 

이런 찬사가 하나도 아깝지 않은 인물이다. 물론 임진왜란을 통틀어 최고의 공헌자는 이순신이지만, 육지에서 아래의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도 항전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흔히 권율이나 김시민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이들은 방어에만 치중하여 명성을 얻은 사람들이었고, 개인의 무력과 지략으로 가장 손꼽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곽재우와 정기룡이다. 그 중 정기룡은 가히 전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정기룡 장군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거창, 금산싸움에서 전공을 세우고 상주성을 탈환했으며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령에서 적장을 생포하고 성주·합천·초계·의령·경주·울산을 수복했던 인물이다. 경남 하동 출신인 그는 경상도 방면의 왜군을 소탕했으며, 1617년 삼도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특히 포로로 잡힌 상관을 구하기 위해 필마단기로 그를 구한 그의 용맹을 일컬어 조선의 조자룡이라고 까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동군 금남면 상촌마을에 있는 경충사의 정기룡 장군 영정

 

곽재우의 경우 과거에 합격했다가 시의 내용이 맘에 들지 않아, 합격을 취소시킨 속좁은 선조마저 그에게 기룡이란 이름을 직접 하사할 정도로 선조는 그를 아꼈다.

 

주목받지 못한 자

임진왜란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한 사람이 북관대첩에서 승리한 정문부라면, 이순신과 같은 비중을 가지고 있는 정기룡에 대한 조명은 너무나 부족하다. 심지어 그의 사당이 있는 하동군에서 조차 그의 기록을 찾기 힘들다.

 

이순신의 승리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한 전투함 제작의 천재 나대용이나 북관대첩을 세우고도 결국 찍혀서 미움을 받은 정문부나, 숱한 공을 세우고도 조정을 미움을 받아 10여회가 넘는 벼슬을 사양하는 곽재우 장군에 대한 재조명은 다분히 필요하다. 임진왜란 최고의 맹장 정기룡 장군보다 논개가 주목받는 세상이라니 ...

 

--------------------------------------------------

임진왜란 1년 전에야 거북선이 완성되었는데, 사실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나대용이 10년을 연구한 결과물이었다. 이순신은 고기가 놀 수 있는 물을 제공한 것뿐이었다.

 

나대용은 임란 후에도 거북선과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한 창선을 만들었다. 창선은 창과 칼을 빽빽히 꽂아 왜구가 배에 오르는 것을 막았고(거북선의 장점), 승선 인원(약 150명)이 많아서 한정된 수군으로 더 이상 늘리지 못하는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하여 45명으로도 운용이 가능한 배를 만들었으나, 그의 상소가 받아들여 졌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일본 수군보다 느린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하여 쾌속선을 발명하기도 했지만, 이것 역시 중하게 사용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물이 없으면, 물고기가 놀지 못하는 법 ... 이순신이 나대용을 10년만 더 바람막이를 해주었더라면 조선은 청해진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재현할 뻔 했다.

 

개인적으로 공로를 평가를 내린다면 ....

----------------------------------------------

이순신 ★★★★★★

정기룡 ★★★★★

나대용 ★★★★★

곽재우 ★★★★

정문부 ★★★

권   율 ★★★

김시민 ★★★

유성룡 ★★★

광해군 ★★

선   조 -★

 

경상남도와 진주시, 하동군은 그 지역에서 태어난 가장 위대한 인물 정기룡 장군에게 전혀 존경심이 없어 그 흔한 홈페이지 하나 없다. 미안 하지만 그 지역에서 정기룡 장군보다 위대한 장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묘소가 있는 상주시는 하동군보다 더 개판이니 웃지마라.

진회와 최명길, 악비와 임경업 그리고 소현세자

불행한 역사의 시작, 인조반정

임진왜란 중 무능한 선조가 사태 수습을 위해 내놓은 최상의 카드는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임진왜란을 수습하게 한 일이었다. 이미 능력을 검증받은 광해군은 외교와 내치로서 임진왜란의 정국을 안정시키고, 왕위에 오른다. 이미 그는 출신 성분 때문에 많은 도전을 받아왔고, 신하들도 그의 편은 아니었다.

광해군의 강한 반발은 피의 숙청을 불렀고, 영창대군과 임해군을 숙청하고, 인조의 친동생인 능창군까찌 숙청한다. 능창군은 어린 나이지만, 충분히 왕재가 될만큼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왕재로 가장 떨어지는 인물이 바로 인조였던 것이다.

인조반정으로 얼떨결에 집권한 서인과 인조는 조선 시대 사상 최악의 군주와 신하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서인의 외세와 결탁하여 나라를 팔아먹은 김자점은 조선 역사상 최악의 인물이며, 인조와 좋은 파트너가 된 것이 오늘날의 이만수 트리오를 보는 듯하다.

광해군 때까지 명-청 등거리 외교를 유지하던 기조가 미국에만 올인하려는 오늘날의 2MB 정권처럼 일방적 명나라 사랑은 많은 재앙을 가져왔다. 우선 그때까지 잘 지내던 청나라의 반발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다.

 

무능한 서인이 불러온 호란

당시 총사령관을 맡은 김자점은 아첨 밖에 할 줄 모르는 인물이었고, 그나마 임경업이 있음으로 해서 그만큼 버틴 것이다. 결국 최명길은 현실을 직시하고 주화론을 주장했으며, 이로 인해 매국노니, 나라를 팔아먹은 많은 놈이라느니 강력한 비난을 당했다. 하지만 최명길은 행동은 하지 못하면서, 주장만 하는 놈들의 꼬라지가 우스웠을 것이다.

결국 인조는 남한 산성에서 45일을 항쟁하다가 한강 변의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하기에 이르른다. 조선 군주 최초이자, 최악의 꼴을 당한 것이다. 인조의 못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강화조약의 결과로 소현세자 부부와 갓 19살 난 동생 봉림대군과 함께 중국의 센양(오늘날의 심양)에 끌려가게 된다.

이때부터 소현세자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는 청나라의 실권자들을 휘어잡고, 서글서글 능글능글한 성격으로 인간관계가 좋게 유지하였다. 그가 있던 심양관은 주청조선대사관으로 변모했고, 많은 영웅들을 불러들였다. 이를 뒷받침한 소현세자빈 강씨는 심양에서 대규모 농사를 짓고, 부를 축적하여 노예로 끌려간 60만 조선인들을 주제해주는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한다.

그들 부부만큼 내치와 외치의 환상의 결합은 없었다. 1644년 명나라를 공략하러 떠라는 청나라의 맹장 도르곤을 따라 청나라로 가서 서구의 선진 문물을 접한다. 그 해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사망하고, 명나라는 멸망하고 잔당만 남게 된다. 소현 세자는 그곳에서 청나라의 국력을 질리도록 실감하게 된다.

한심한 김자점 같은  서인들은 스스로 단 한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하면서, 북벌만 주장하는 어리석은 무리였는데, 스스로 전투에 나가지 못하고 그들과 대척점에 있는 임경업을 청나라로 파견하여 명군과 싸우게 하는 한심한 짓거리를 저지르게 된다.

 

성군 소현 세자의 숙청

다음 해, 1645년 소현세자는 돌아오지만, 아직도 반청 주전을 주장하는 쓰레기들에게 둘러 쌓이게 된다. 거의 전패하다 시피 할 정도의 전쟁 수행 능력으로 청나라 정벌을 주장하는 서인 도당들에게 둘러 쌓여, 소현세자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충고하고 서양의 문물들을 소개하지만, 인조는 분노하고 벼루를 던져 소현 세자의 이마빡을 깨뜨린다.

인조는 용골대나 도르곤 같은 쟁쟁한 명장이자 청의 실권자들이 소현 세자를 지지하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왕위 위양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결국 두 달 뒤 어의 이형익의 시술을 받은 소현 세자는 얼굴이 새까맣게 변하고, 칠공에서 선혈을 토하는 시체로 발견된다.(인조실록 인조 46권, 23년, 소현세자의 졸곡제를 행하다)

이는 김자점이 뒤를 받치는 귀인 조씨 조소용과  인조의 합작이었다. 인조는 왕족이 사망하면 어의를 중벌에 처하는 관례를 무시하고, 언급조차 금하게 하여, 어의 이형익을 보호했으며,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강빈과 신하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장례를 지내게 한다. 또한 장례는 평민장으로 진행되었으며, 장례일이 흉한 날이라고 지관 최관을 협박한 강빈의 동생 강문성과 아래의 삼형제를 모두 유배시켜 버린다.

또한 부랴부랴 귀환한 봉림대군을 본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자에 책봉한다. 선조는 또한 진상 조사를 위해 청나라에서 온 사신들을 잘 따 돌린 공으로 묘지기들과 관리 책임자에게 포상을 하고 벼슬을 준다.

1646년 강빈의 궁녀들인 계향과 계환이 인조의 수라에 극독을 넣었다는 혐으로 투옥되어 고초를 치르다 죽는다. 김자점과 조소용은 이를 계기로 강빈을 역모로 몰아 별당에 유폐하고 사약을 내려 죽게 한다.

그후 강빈의 친정 노모와 네 아들도 모두 역모로 몰아 처형시킨다.  

1646년 소현 세자의 세 아들, 12세, 석철과 8세의 석린, 4세의 석견은 모두 제주도로 유배되고, 2년 뒤 첫째 석철은 장독으로 사망하고, 둘째는 병으로 사망하며, 당시 6세인 석견만 살아남아 봉림대군의 효종 즉위 후 복위되게 된다. 청나라 용장 용골대는 첫째 석철을 아껴 청나라로 데리고 가서 양자로 삼으려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사신은 손자를 죽인 인조를 한탄하며 제주도를 떠난다.

 

진회와 최명길

최명길은 역사를 꿰뚫고 있는 현명한 재상이었다. 금나라 때 여진에 대한 입장은 대부분 악비나 한세충 같은 주전파들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진회는 본인 스스로가 주전론자들의 주장 때문에 포로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경험(정강의 변)했기 때문에 현실적인 무력에 대한 강력한 인지를 하게 된다. 주전론만 주장했다가 수도가 함락되고 황제까지 끌려간 남송의 역사가 채 400년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서인과 효종의 북벌론

서인들의 입장에서도 똑똑한 군주를 원하지 않기는 마찬가지 였다. 서인들은 인종 정도로 멍청한 국왕을 원했고, 이미 개혁이나 개방과 현실적인 힘에 눈 뜬 소현 세자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틀림없이 거센 반발과 북인들의 피의 숙청으로 얻은 기득권을 잃을 수 있는 것은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 또한 소현 세자비 강씨의 경영 능력과 그녀를 뒷받침 해주는 강씨 형제들의 괄괄함도 도저히 봐주기엔 너무도 위험한 싹이었다.

형인 소현 세자의 옆에서 그러한 청나라의 국력을 실감한 효종이 과연 진정으로 북벌을 원했을까? 오히려 북벌보다는 호란을 통해 허무하게 무너진 자위력 향상에 그 숨은 목적이 있었음 충분히 예측해 볼 수 있다. 효종으로서는 자위력 향상과 철없은 북벌론자들을 달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전략이었다.

우리가 아쉬운 것은 조선 시대 개혁과 개방을 이끌 수 있는 최고의 리더쉽을 가진 지도자 한 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호랑이 새끼가 되지 못함을 한탄하는 부모는 많아도 자식이 호랑이임을 겁내는 부모를 우리는 유일하게 목격한 것이다.

경제성장률

'''경제성장'''(economic growth)이란 특정 국가에서 일정 기간 동안, 특정 경제에 의해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증가분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경제성장률(economic growth rate)은 실질 ’국내 총생산‘ 또는 실질 GDP(gross domestic product)의 증가분으로 측정을 해왔다. ’성장‘이란 보통 재화와 용역의 가격에 대한 인플레이션의 영향까지 반영된 실질 생산이 반영되어 측정된다. 따라서 전년대비 실질 GDP의 증가분을 경제성장률 또는 GDP 성장률이라고 한다.

 

== 대상 ==

경제성장률은 1년간 한 국가의 영토 내에 있는 외국인과 내국인들의 경제활동, 가계, 기업, 정부가 생산활동에 참여하여 만들어 낸 부가가치 또는 최종 생산물의 합계를 이전년도와 비교하여 산출해 낸다. 따라서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생산한 소득은 포함되지만, 한국 기업이 외국에 진출하여 생산해낸 소득은 포함되지 않는다.

 

 == 측정 지표 ==

1980년대까지는 경제규모 등 국민소득의 지표로 국민총생산(GNP)가 주로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물가상승률과 인플레이션을 모두 반영한 GDP가 더 널리 사용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이 증가하고, 외국인들의 투자가 확대됨에 따라 '국민총생산'(GNP)보다는 '국내총생산'(GDP)를 선호하게 되었다.

 

 == GDP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

* 원자재 가격

한국과 같이 매장량이 없고, 전체  수입에 의존하는 원유는 생산단가에 반영된다. 생산단가에 반영된 원자재는 판매가격에 영향을 미치며, 국내외 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을 결정한다.

 

* 실업률

생산과 소비, 투자와 저축을 담당하는 주체로서 낮을수록 건전한 지표로 나타난다.

 

* 물가상승률

자금조달 비용과 생산원가를 결정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Economic_growth

 

위키에 올릴 것 작업 중 (아무나 위의 내용을 포함하여 먼저 올려버려도 상관없음)

 

http://www.daankal.com/srt/s33.html

 

== 바깥 링크 ==

* [http://ecos.bok.or.kr/jsp/use/koreco/KorEcoPopUp.jsp?tableId=T_ECO_GRO 한국은행 주요통계지표]

 

연중국내총생산국민총소득1인당 GNI경제성장률
(명목GDP)(명목GNI)(명목)(실질)
(억달러)(억달러)(달러)(%)

1997

5164

5136

11176

4.7

1998

3461

3404

7355

-6.9

1999

4452

4400

9438

9.5

2000

5118

5096

10841

8.5

2001

4820

4811

10159

3.8

2002

5469

5475

11497

7

2003

6080

6086

12717

3.1

2004

6809

6824

14206

4.7

2005

7913

7901

16413

4.2

2006

8875

8887

18401

5.1

2007

9699

9713

2004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