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 목록

화요일, 9월 08, 2009

우루무치에 대한 기억

3년 전 우루무치를 가보기 전에는 다음과 같이 예상했었다.
 
"우루무치에는 전부 위구르족 외에는 보기 힘들겠지? 길거리에서 당나귀를 끌고 다는 위구르족들 ... 독특한 음식들.."
 
그런데 왠 걸 ... 내리자 말자 ... 든 느낌은 우리나라의 부산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한족의 이주 정책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빌딩에 ... 계속 올라오는 고층 건물들 .... 거리에 늘어선 빽빽한 차들 .... 위구르족은 시외나 국제시장 근처 외에는 찾아보기조차도 힘들었다. 알고보니 한족이 상권을 형성하면서 집과 땅을 잃은 위구르 족은 거의 다 시외로 쫓겨난 것이다. 결국 지금은 한족이 75%를 넘게 거주하고 있으며, 시내 중심가와 번화가에서는 위구르족 자체를 찾기가 힘들다. 처음에는 급격한 정부차원의 이주정책을 펼쳤고, 나중에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한족이 시나브로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하게 되었다.

서부대개발

이미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위구르족이 발붙일 곳은 드물며, 게다가 서부대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위구르에서 카스(카슈가르)에 이르는 신장 대부분의 자원을 거의 수탈하다시피 북경이나, 기타 공업도시로 나른다. 신장에서의 얻은 부를 다시 신장  지역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마오쩌둥이 모든 민족을  동등하게 대하겠다는 약속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미 한족은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는 중심에 서 있고, 그 아래에서 소수민족들이 설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도시와 시골의 빈부격차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주로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는 위구르는 그러한 변화속에 점점 불만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불만을 진압하는데는 총보다는 지도자의 확실한 약속과 정책변화만이 그들의 독립의지를 잠재울 수 있다.
 

위구르의 문화

위구르족들의 30세 이상의 성인들 중 베이징어를 말할 수 있는 성인은 많지 않고 그 연령대가 40세 이상이라면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신식 교육을 받은 젊은 위구르만이 한어가 유창할 뿐이다. 위구르족들에 대한 교육도 다른 소수민족과 비교하면 높지 못하다. 위구르의 전통문화는 점점 죽어가고 있으며, 한족들은 이를 더욱 부채질한다.

위구르 지역은 언어뿐만 아니라 음식문화도 한족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대부분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음식인데, 쌀로 된 요리는 한족 식당에서나 구경할 수 있다. 위구르의 음식은 딱딱한 빵과 면이 주류를 이루며, 양고기나 닭고기, 소고기 류 등이 대표적이다. 매운 음식도 익숙하게 발견할 수 있으며, 가끔은 생선요리도 찾을 수 있다. 위구르의 음식점 앞에는 모두 淸眞이라는 표시가 있다.

노래와 음악도 한족과는 달리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다. 비파와 같은 작은 금과 독특한 창법의 노래가 그들만의 고유 문화이다. 종교는 대부분 이슬람이며, 이들을 중국어로 이들을 회교(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회족(回族)이라고 하며, 위구르 사람들을 회민(후이민, 回民)이라고 한다. 또한 이들이 모여서 장사를 하는 거리를 종종 회민가(후이민제, 回民街)라고 하며 이곳에서는 독특한 이슬람 음식과 기념품 등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문화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한족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이들이 경제적, 교육적인 격차를 극복하기란 처음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화인민공화국에 있어, 강제로 병합한 티베트 문제는 눈의 가시지만, 위구르 문제는 전체 소수민족의 단합을 깰 수 있는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에 이들로서도 쉽게 철퇴를 가하기는 힘들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