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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9월 12, 2010

너무나 슬픈 허난설헌의 삶

불행한 삶의 여주인공 허난설헌

허난설헌은 아주 행복한 삶을 15년을 살고, 아주 불행한 삶을 12년을 살았다.
중국에서 대문호 소식(동파), 소철, 소순 가족을 3소라고 불렀듯이, 허난설헌의 가족도 모두 대문장가의 집안이었다.
 허난설헌은 15살에 1살 연상인 명문 안동김씨의 김성립에게 시집가게 된다.

이때부터 그녀의 삶은 급전직하 하게 된다.
- 18세 때는 아버지 허엽이 병으로 객사하고,
- 20세에 딸을 잃고, 21세에 아들을 잃어, 그 절규하는 심정을 <곡자>에 담았다.
- 21세때에 아들의 묘비명을 써주고, 가장 허난설헌을 아껴주었던 둘째 오빠 허봉이  귀양을 간다.
- 26세 때에 둘째 오빠 허봉이 객사한다.
- 27세에 원인불명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가 27세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모든 것은 죽음과 상실 뿐이었다.

허난설헌의 잘못은 짝을 잘못 만난 것
역사에는 허난설헌의 남편인 김성립과 시어머니 송씨는 아주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대부분이 허균과 친인의 진술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똑똑하거나 예쁜 천재 누나에 비해 눈에 차지도 않는 형부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김성립의 잘못은 평범한 인물이라는 것일뿐 아무런 잘못도 없다. 김성립이 방탕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는 그 시대의 대부분의 인재들처럼 28세에 급제를 하였는데, 그 해는 허난설헌을 죽은 해였다. (허균도 26세에 급제를 함)

허균은 그의 자형(김성립)을 "문장을 짓지는 못해도 시험문제는 잘 푼다!"는 평가를 내렸고,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렸다. 현대로 평가하자면, IQ는 모르겠는데 EQ는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그 평가에 대한 관측 기준은 아마도 김성립의 10대 였을 것이다. 대문호 집안에서 평범한 사람이 눈에 찰리가 없다. 당신도 동생이나 누나의 짝을 볼 때는 그런 느낌이 없었던가?


김성립의 평범한 뛰어남이 죄일까?
27세의 나이로 허난설헌이 죽은 해가 되어서야, 김성립은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리고 가문을 잊고자 남양 홍씨를 처로 들이고 재혼을 하게 된다. 

처음부터 남양 홍씨와 결혼을 했다면 김성립도 행복한 삶을 누렸을지도 모르겠다. 김성립에게 허초희는 너무도 감당하기 힘든 존재였을 지도 모른다. 마치 적벽대전에서 부채살 뒤에서 웃고 있는 공명을 째려보는 주유를 지켜보는 노숙의 입장이랄까? 김성립은 천재가 아니었기에 그녀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죽자마자 재혼한 김성립을 욕할 자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에 가문을 이어야 할 장자의 본처가 후사도 남기지 않고 요절해 버린 상황에서 어떤 가문이 재혼을 재촉하지 않으랴?

진정 불행한 것은 김성립의 새로운 처 남양홍씨였다. 김성립과 결혼한 지 3년만에 자식도 두지 못하고 남편이 임진왜란에서 전사하고 그의 시체도 찾지 못하고 가묘만 만들어 제사를 지내게 된다. 홍씨는 평생 독수공방을 해야했고, 결국 가문에서는 양자를 들이게 한다.

혹자는 허난설헌이 죽어서도 김성립과 같이 묻히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남양 홍씨는 껍질만 있는 가묘에 김성립과 같이 매장되어 있을 뿐이고, 그나마 허난설헌은 자식들과 함께 묻혔으며, 12년을 결혼생활을 하였다. 고작 3년의 신혼만 누린 채 평생을 독수공방해야 했던, 홍씨에겐 그만큼의 당연한 권리가 있다.

또한 허균이 역모로 몰려 숙청된 결과도 김성립과 묘를 분리하는데 한 몫 했을 것이다.

잘못된 만남 김성립과 허난설헌
군자호구, 요조숙녀는 오히려 김성립과 홍씨를 말할 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만났다면 좀 더 행복한 삶을 누리지 않았을까? 천재 여류시인도, 천재문호를 만났으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평범함의 안타까움, 비범함의 슬픔, 짧은 인연의 비애가 김성립- 허난설헌 - 홍씨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 같아 안타까워 이렇게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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